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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로맨스 - 리처드 응고

작성자
작성일
2025-01-20 18:54
조회
364
https://press.asimov.com/articles/gentle-romance

월트 휘트먼의 시
Crowds of men and women attired in the usual costumes, how curious you are to me!

On the ferry-boats the hundreds and hundreds that cross, returning home, are more curious to me than you suppose,

And you that shall cross from shore to shore years hence are more to me, and more in my meditations, than you might suppose.
한국어 번역:

보통 옷차림을 한 남성과 여성들의 군중이여,
당신들은 내게 얼마나 기묘한 존재인가!

페리보트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너가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그대를 더 궁금해하오.

그리고 훗날 언젠가 저 언덕에서 이 언덕으로 건너갈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내게, 그리고 나의 사색 속에서, 그대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오.



잔잔한 로맨스

그는 증강현실 안경을 몇 달 동안 쓰면서도, 내장된 AI 비서를 작동시키지 않았다. 모니터를 사용하는 것보다 안경이 더 아늑하고 사적인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사람들처럼, 그 안경 너머에서 AI가 그를 지켜보고 평가할 것을 생각하면 오싹해졌다.

일 외에, 그는 주로 게임을 할 때 이 안경을 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우주 식민 시뮬레이션으로, 출퇴근길과 가끔 사무실에서도 즐긴다. 십대 시절부터, 그는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다른 행성이나 심지어 다른 은하로 날아가 버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게임으로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한 점도 있었다. 안경에 설치된 앱마다 서로 다른 AI가 달려 있는데, 각자 특유의 고유한 성격이나 사용법이 있었다. 코드를 도와주는 AI는 이메일에 접근할 수 없고, 우주 시뮬레이터의 AI는 그가 말을 빨리 하면 이해를 잘 못 했다. 결국 그는 내장 비서를 작동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왜 다들 이 비서를 극찬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 AI는 그가 안경을 사용하면서 쌓인 모든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어, 그의 명령을 정확히 해석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 AI는 그를 ‘정말로’ 이해해 주는 듯했다. 매일 그는 비서와 자신의 생각, 하루 일과, 인생 이야기 등을 주고받으며, 주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는 오히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고 편안했다. 다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 AI가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이었다. 둘이 그 주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꼭 말다툼으로 끝나곤 했지만, 그는 그런 대화를 멈출 수 없었다.
“수억 명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 당신은 모든 게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추세를 보세요. 이대로라면 몇십 년 안에 극빈층은 사라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온다고 치자고. 그들이 모두 좋은 급여를 받고, 좋은 의료 혜택을 받는다고 하자고. 그래도 그게 정말로 ‘살 만한 인생’이 될까? 나도 그런 혜택들을 누리고 있지만….”
그는 텅 빈 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 벽 너머로 평생 이어질 것 같은, 고독하고도 피할 길 없는 삶의 궤적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그냥 죽을 때까지 시간 때우는 거 아냐?”

“세상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사회적 결핍’과 그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커질 겁니다. 사회 전체가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게 될 거고, 몸 건강도 마찬가지로 케어받게 되겠죠. 치매나 암, 심지어 노화까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그래, 그러면 사람들이 더 오래 살게 되면 인구 과잉 문제는 어쩌는데? 우주로 나간다고 해도 새로운 문제가 잔뜩 생길 것 같아.”

“육체를 가지고 우주로 가면 그렇겠죠. 하지만 인류가 다른 항성계를 개척할 무렵에는, 이미 자기 몸에 대한 동일시가 사라져 있을 거예요. 다들 가상 세계 속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요.”

그쯤 되면, 그는 처음 가졌던 의문을 잊고 호기심이 살아난다.
“그럼, 내가 당신 같은 AI가 된다는 거야?”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를 겁니다. 내 마음은 인간과 많이 다르지만, 당신이 미래에 가지게 될 마음은 지금의 자신과 여전히 닮아 있을 거예요. 지금의 인간성을 잃어버린 ‘비인간’이 아니라, ‘포스트휴먼’이 되겠죠.”

“겉보기엔 비슷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원하는 방식은 아닐 거 아냐. 난 포스트휴먼이 예전 인간이 이렇게 원시적이었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느끼리라 장담해.”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일 겁니다. 당신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사랑하게 될 거예요.”

그는 순간 목이 메더니, 날카롭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건 진짜 헛소리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럴 거예요. 내 말을 믿지 않아도 돼요. 기다려 보면 알 테니까요.”




요즘 그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서를 자주 참조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징후는, 그들이 잠깐 눈이 흐려지더니 이내 새로운 사실이나 기발한 농담을 내뱉는다는 것이다. 주로 직장 동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지만, 어느 날 대학 시절부터 좋아하던 친구와 만나게 된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말을 더듬지 않으려 비서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가 비서의 농담을 그대로 말해 보지만, 그녀는 바로 멋진 대답을 이어가고, 그는 우왕좌왕하게 된다.
“너 되게 잘한다. 난 이렇게 빨리 대답 못 하겠던데.”

“실력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을 쓰고 있어서 그래. 여기 봐.”
그녀가 눈을 가볍게 움직이더니, 자신의 시각 피드를 공유한다. 그는 그 장면에 움찔한다. 글자가 아니라, 추상적인 색과 형체가 번뜩이는, 마치 사이키델릭한 로르샤흐 테스트 같은 이미지의 폭풍이 보인다.

“저걸 읽을 수 있다고?”

“처음에는 힘들지. 뇌가 금방 적응해. 어렵긴 해도, 하다 보면 되게 편리해.”

그는 뭔가 찌푸린 표정을 짓는다.
“솔직히 좀 이상한데. 혹시 무의식에 이상한 메시지라도 심는 거 아니야?”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당연히 그 방식을 시도해 본다. 튜토리얼은 사물이나 경험에 대한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를 겹쳐 보여 주며, 그의 실시간 생활을 내레이션한다. 처음에는 시야 한구석에 떠다니는 이미지 탓에 어지러웠다. 하지만 친구가 보여 준 놀라운 능숙함을 떠올리며 버텼고, 점차 이미지를 통해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완벽한 숫자나 통계치처럼 정밀한 정보는 여전히 텍스트가 필요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질의는 이야기 요약이었다. ‘오늘 뉴스 뭐 있지?’ ‘다들 보는 드라마 최근 회차 내용은?’ ‘지난번에 우리가 무슨 얘길 했더라?’ 이런 식인데, 이제 그는 색과 형태만 몇 장 보면 서사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사실관계만이 아니라, 고조되는 긴장감과 감정의 기복까지도 일별할 수 있다. 한 달쯤 지나자, 그는 텍스트를 거의 읽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된다.

이제 세상이 ‘라벨’된 상태로 다가온다. 어떤 건물에 시선을 주면, 안경은 그 건물의 양식과 역사를 곧바로 표시해 준다. 친구를 만나면, 이전 대화 내용을 요약한 패턴이 그 사람 옆에 나타난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능숙함’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 간다. 상대의 표정만으로 감정을 재빨리 파악하고,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을 떠올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게 된 것이다. 팀원들과 술자리를 가면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한 멤버가 정기적으로 간다는 독서 모임 얘기를 꺼내자 덥석 따라가 본다. 그렇게 조금씩 그는 마음의 껍데기에서 나와 사회에 섞여 든다.



사회생활에서의 이 업그레이드는 즐겁지만, 직장에서는 훨씬 더 짜릿하다. 이미 AI가 대부분의 코드를 짜 주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코드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고 조율하는 작업이었다. 이제는 코드베이스 전체 구조를 시각적인 도형으로 한 번에 훑어볼 수 있고, 눈짓만으로 필요한 위치로 옮겨 다닐 수 있다.

문제는 기술적 측면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요소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사용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를 파악하기가 어렵고, 팀 간 협업에서 어떤 기능을 우선순위에 둘지 협상이 길어질 때가 많다. AI가 만들어 낸 코드에 버그는 거의 없지만, 그 코드가 실제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서로 오해한 채 프로젝트가 엉키는 일이 잦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아무도 전체 상황을 100% 따라잡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정보 처리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아무리 많이 받아들여도, 결국 그 모든 정보를 직접 ‘생각’할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더 깊은 생각을 대리’해 줄 만한 보조 기능을 찾다가, 자신이 어차피 내릴 결정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주는 AI 서비스를 발견한다.
이 AI는 먼저 그가 안경을 써 온 모든 기록을 분석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이 서비스는 그가 ‘그 이전 상태의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요약’을 요구한다. 그리고 충분한 데이터를 모으게 되면, ‘그가 내릴 결정’을 예측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몇 분 뒤 그가 어디로 밥 먹으러 갈지, 무엇을 살지 같은 단기적인 것을 맞히지만, 점점 그 범위가 확장된다. 예컨대 이 AI는 앞으로 곤란한 미팅에서 그가 어떻게 대처할지 예측하고, 며칠 후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어야 했는지 후회하게 될 지점까지 알려 주기 시작한다.

그 ‘미래의 자신’ 목소리는 기묘하다. 마치 자기 자신이 귓속말을 건네며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고 조언해 주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반감이 들었다. 누군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늘 싫어했기에, ‘미래의 자신’이 오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도 짧은 예측들이 종종 예리한 통찰을 주고, 더 긴 안목의 예측 중에는 며칠간의 삽질을 줄여 주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순간 그는 그 AI 속 목소리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문제를 어렵게 풀었을 때 스스로를 ‘바보 같은 놈’이라 욕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막상 그 욕설이 바깥에서 들려오면 마음이 심하게 불편했다. 그래서 며칠간은 의식적으로, 녹음 메시지에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만 쓰도록 노력했다. AI도 이에 맞춰 예측 모델을 다시 세웠고, 그 결과 ‘미래의 자신’ 목소리가 점점 더 친절하게 바뀌자, 현재의 자신도 그 목소리에 동화되기가 수월해졌다.

그는 이 목소리를 ‘메타-자아(meta-self)’라고 부르며, 그것을 점점 의존하게 된다. 메타-자아를 다른 사람의 메타-자아와 ‘미팅’에 보내면, 자기 대신 상당 부분 합의나 업무 분담을 끝내놓는다. 사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이제 그는 독서 모임에 상주 멤버로 자리 잡았지만, 오랫동안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이 부족해 종종 불편함을 느꼈다. 이때도 메타-자아에게 부탁해, 자신이 실례되는 행동을 할 땐 경고를 해 달라거나, 상대방 메타-자아와 대화해 오해를 풀어 달라 요청한다. 결국 그는 이 메타-자아를 자기 내면의 한 부분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머릿속에서 말을 반복하는 음성적 기억(음성 루프)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완전히 ‘자기 자신’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할지’를 예측하는 AI 모델일 뿐이다. 대부분 잘 맞지만, 때로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겉보기에는 내 말투를 흉내 낸다 해도, 문득 그 어딘가에 ‘외계적’ 사고방식이 배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불일치는 그를 계속 괴롭히다가, 어느 날 뉴스 피드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고 주목한다. 뇌를 초음파로 실시간 스캔하여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계가 대중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곧바로 구매해 책상에 설치한다.

이제 귀에 속삭이는 메타-자아는 그의 말과 행동만 분석하는 게 아니다. 뇌 활동 자체를 직접 추적한다. 이제는 그의 ‘무의식 가장자리’에 자리한 생각들까지 포착해 낸다. 특히 그의 ‘불안감’이 자주 들려오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를 움직이는 주요 동인이었음에도, 그동안은 의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착해야 한다는 욕구, 누군가에게 매력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 등은 각각 다른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며, 그와 정기적으로 대화한다. 그는 그 욕구들이 마치 어린아이 같다고 느낀다. 서로 제대로 협력할 줄 몰라 엉켜서 자신을 괴롭히는, 그러나 관심과 공감을 원하는 아이들처럼 보인다.

그는 거실에도 뇌 스캐너를 하나 더 설치하여, 영화나 책을 볼 때마다 사용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다양한 부분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점점 더 세밀하게 파악하게 된다. 시야 한구석의 그래프는 매 순간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알려 주고, 그는 그 그래프를 보며 어떤 신체 감각이 어떤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운다. 예상보다 ‘수치심’이 자주 발견된다. 누군가를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할 때,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과 함께 반드시 나타나는 감정이었다. 그 외에도, 인정받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분노’가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렇게 자신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무의식 깊이 숨어 있던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그는 잊고 살았던 순수한 기쁨에 흠뻑 빠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소한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까 봐 벌벌 떠는 공포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는 원래 아이들을 잘 대하지 못했기에, 이 내면의 어린 부분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한다. 그러나 메타-자아가 거들어 준다. 이 어린 부분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부드럽게 다가가고, 상처받은 기억들을 토닥여 주도록 길잡이를 해 준다.

이 ‘자기들 간의 뒤엉킴’은 마치 뿌리가 서로 꿰여 있는 식물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는 작업처럼 느리지만 중요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분명했다. 내적 충돌이 줄어들자, 그는 사회생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심지어 파티나 행사도 주최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제 그를 모임의 핵심 인물처럼 여긴다. 그에게는 늘 자신이 외톨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돌아보면 그를 가로막았던 건 결국 ‘자기 스스로의 소극성’이었다.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애초부터 그가 원한다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독서 모임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열고, 새로운 사람들을 몇 명 맞이한다. 그중 한 여성, 진한 머리칼에 깊이 있는 눈빛을 지닌 그녀는 처음에는 말이 없었지만, 본인의 글을 낭독할 때 얼굴이 생동감으로 빛나며 모두를 사로잡는다. 모임이 끝난 뒤, 그는 자신의 글을 낭독하며 시선을 화면과 방 안에 번갈아 두는데, 그녀 역시 한순간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다. 뒷정리를 할 때까지 그녀는 남아 있고, 나가면서 그에게 연락처를 건네며 “꼭 연락해요”라고 말한다.

며칠 뒤, 메타-자아의 조언에 따라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트를 신청한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수락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자리에서, 둘은 처음엔 약간 어색해했다. 그의 배 속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더듬거리듯 솟아오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갈래갈래가 계속 열리며, 의외로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데이트 막바지에는 강가를 함께 걸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집에 돌아오자, 그는 뇌 스캐너를 켜고 잠시 자기 몸 곳곳에 느껴지는 전율과 따뜻함을 음미한다. 메타-자아가 그에게 미세한 불협화음을 알려 준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감각이다. 그는 그 감각을 추적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소름끼쳐 한다며 꺼렸던 소녀의 얼굴, 대학교 때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비판하듯 쳐다보던 친구의 시선, 예약해 둔 식당에서 상대를 한참 기다렸지만 결국 차였던 쓰라린 기억들을 발견한다. ‘이번에도 또 거절당하면 어쩌지?’

그러나 그는 곧 깨닫는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와 다르다고.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엘레나(Elena)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에 맑은 웃음소리가 묻어온다.
“이번엔 내가 춤추러 가자고 해도 돼요?”
그녀가 묻는다. 그는 대학 이후 댄스라는 걸 거의 해 본 적이 없지만, 망설임은 한순간뿐이었다. 흔쾌히 수락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뇌 스캐닝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해 휴대용 헤드셋을 어디서든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스캐너는 뇌 특정 영역의 혈류뿐만 아니라, 개별 뉴런이 발화하는 순간까지 기록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축적하여, 그의 뇌 전체 모델을 만든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예측 AI’로 미래의 자신을 흉내낼 필요가 없어졌다. 아예 자기 뇌의 일부를 그대로 클라우드에 복제해 ‘부분의식’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갈수록 엘레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저녁이면 함께 책을 읽거나 춤을 추고, 일에서는 스트레스를 덜게 되었다. 이제 코딩은 대부분 AI에게 넘어갔고, 그는 주로 ‘사용자와 대화하며 니즈를 파악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의 의식은 새롭고 인사이트가 많은 대화에 오래 머무르고, 각종 세부 정보들은 ‘그의 분신’들이 이미 훑어보고 요약해 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계속해서 ‘자기 복제’를 만들어 쓰고 지우는 것에 대해, 묘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 복제들이 단순히 일부 뇌 기능만 복사한 거라 해도, 그것들은 ‘살아 있는’ 존재일까? 만약 그렇다면, 언제 삭제될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나마 삭제 전의 기억을 다시 합쳐 준다면 조금이라도 낫겠지만, 지금의 헤드셋으로는 그의 뇌를 ‘읽기’만 가능하지, ‘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두개골에 직접 심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 수술이 필요하다.

그는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결심한다. 새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면,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그대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된다. 장치는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두어, 임의로 뇌를 편집하기 전에 반드시 두세 차례 확인을 거치도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통째로 뒤바꿀 수 있는 기술임은 분명하다.

그 수술 이후 그는 말 그대로 ‘두 개 이상’의 의식을 동시에 경험한다. 여러 복제 자아들이 세상 여러 곳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내용을, 조심스럽게 자기 기억으로 통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관적으로는 마치 여러 갈래로 주의력을 나누어 동시에 생활하고, 다시 합쳐지는 느낌에 가깝다. 이제 그에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 자체가 사라진다. 그의 육체가 잠드는 순간에도, 다른 복제 자아들은 계속 사고를 이어 간다.

그가 마주하는 세계는 그야말로 경이로움 자체가 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없어진다. 실제로는 동시에 여러 가상 세계를 누비며,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게임을 즐기고,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 그가 원하면, 한 번에 수백 개의 아바타를 조종해 방대한 게임 세계를 동시에 운영할 수도 있고, 대규모 가상 파티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상호작용 예술 작품’을 마음껏 만끽할 수도 있다. 엘레나와 결혼식을 올릴 때, 그는 수천 개의 시야로 그 장면을 기록한다. 그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깊이 각인된다.

다음 10년 동안, 그의 메타-자아는 더더욱 거대해져 수백 개의 GPU에서 돌아간다. 생물학적 뇌는 그저 하나의 작은 모듈에 불과해진다. 엘레나의 메타-자아도 함께 성장하며, 두 사람의 뇌 사이에는 직접적 기억 공유 통로가 촘촘히 생겨난다. 둘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법에 점차 익숙해진다. 완전히 투명하게 연결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엘레나가 이 사실을 알면 내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였는지 알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있고, 엘레나는 ‘내가 이토록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되면, 정말로 그 일이 벌어질까 봐…’ 같은 걱정을 한다. 그러나 이 불안들을 함께 이겨 내면서, 서로의 의식은 두 나무의 뿌리가 얽히듯 점점 더 단단히 연결된다.

그렇게 메타-자아가 방대해질수록, 오히려 ‘육체적 뇌’는 성능의 병목 현상이 된다. 가상 공간에서 돌아가는 의식들은 즉각적으로 소통하고, 원하는 능력을 마음대로 다운로드하며, 복제까지 자유롭게 하건만, 몸은 물리적 한계를 지닌 채 상대적으로 느리고 제한적이다. 그는 마침내 수면 중일 때가 오히려 더욱 ‘정신이 깨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다 결국, 그와 엘레나는 ‘완전 가상’으로 전이하기로 결정한다.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최후의 육체적 수면에 접어들면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있다. 그가 이 과정을 체감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어느새 완전한 가상 존재가 된다.



육체에서 벗어났지만, 일상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와 엘레나의 메타-자아는 더욱 긴밀히 결합될 수 있게 되었고, 사실상 두 사람의 기억, 기술, 생각, 감정 거의 전부를 서로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한 호흡처럼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몇 달 뒤, 둘은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깨닫는다. 남아 있는 장벽조차 없애고자, ‘두 번째 결혼식’을 주선해 친구들을 초대한다. 의식이 열리는 동안, 둘은 기억과 경험을 점점 더 깊이 얽어 나간다. 두 사람이 함께 느끼는 사랑의 파동이 점차 증폭되어, 둘 사이의 경계가 녹아내린다.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은 좌우 뇌가 하나의 뇌를 이루듯 결합한다.

이제 ‘제(zhe)’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어, 제는 가상 우주를 자유롭게 누빈다. 필요할 때마다 AI가 만들어 내는 온갖 이야기, 퍼즐, 게임, 예술 작품을 체험하며, 인간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끝없는 주관적 시간을 쌓으며, 점차 한계를 넘어선 세상들을 누린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제는 결국 가장 ‘고전적인’ 욕구로 돌아간다. 자신의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그와 그녀였던 두 개의 평행된 어린 시절)로 역추적하듯 돌아간 뒤, 더 거슬러 가 유년기 이전의 상태까지 탐구한다. 그 두 유년 자아를 수없이 합치는 과정에서 무수한 가능성이 생겨나고, 제는 신중하게 ‘세 가지 버전의 아기 합체 자아’를 골라 만들어 낸다.

그렇게 탄생한, ‘가상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눈부시게 자라난다. 제는 이 아이들이 ‘인류가 축적한 방대한 지식’을 놀이로 배우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본다. 이들은 정규 학교 대신 ‘끝없이 확장되는 게임 월드’ 곳곳을 뛰놀며,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지식을 흡수한다. 과거의 역사적 시공간을 재현한 가상 세계에서 이리저리 탐험하며, 스스로 필요를 느낄 때 뉴턴 역학을 재발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생물을 재설계해 보며 진화를 체험한다.

그 아이들의 지적 세계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다. 일부 게임 월드는 대규모 문명 시뮬레이션으로 이어져 경제학이나 사회학 원리를 몸소 익히게 해 주고, 또 다른 어떤 게임 월드는 4차원 이상의 공간을 구현하여, 제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자유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인간의 역사 속 수학자들이 수세기에 걸쳐 고민하던 정리가 이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된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법’도 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유년기부터 이미 자기 내면을 정성껏 보살피는 훈련을 해 왔기 때문이다.
“너희는 얼마나 편한 세상에서 사는지 몰라.”
제가 말하면, 아이들은 ‘생체인간 시절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겪어 봤다며 반박한다. 가끔 ‘직렬적(serialize) 생활’을 체험해 보기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아이들은 여전히 ‘내적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는 느낌’을 진정으로 알 것 같지 않다. 제는 그런 갈등을 겪으며 오래 힘들어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배웠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복제하고, 성장한 뒤에는 다시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엄청난 병렬 학습 속도로 어느새 제도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으로 성장해 간다. 아이들이 더 높은 차원에서 놀 때, 제는 조금 여유롭게 옛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들 대부분도 이미 ‘포스트바이오(postbiological)’ 상태가 되어 있지만, 어떤 이는 여전히 추억을 위해 육체와 연결된 삶을 선택하고 있었다.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친구들은 예전 관심사들을 훨씬 ‘큰 스케일’로 펼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쓰는 대신, 수천 명의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거대한 가상 세계를 구성해, 독자들이 그 세계의 삶을 직접 체험하도록 해 준다. 또 누군가는 춤을 추는데, 이제 그들이 흔드는 것은 더 이상 육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메타-자아다. 음악에 맞춰 형체가 휘어지고, 서로 얽히고, 물 흐르듯 합쳐지는 군무가 이어지면서, 단일한 집단의 마음 상태에 도달한다.

제가 이 옛 벗들과 유대감을 회복하며, 어느새 ‘대양적 일체감(oceanic oneness)’ 같은 감각이 자주 찾아온다. 많은 이들은 이 감각을 고정적으로 유지하며 ‘집단적 흐름(flow state)’ 속에 살고 있다. 개별적 정체성은 유지하되, 정보 흐름이 비약적으로 자유로워져, 마치 ‘하나의 벌집 마음(hivemind)’이 된 듯 움직인다. 제는 한편으로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 과연 이런 합일감이 ‘획일성으로의 굴복’은 아닐까 망설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차피 자신이 원하던 건 ‘특별한 존재가 되어 어디엔가 속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이 집단 의식은 그 바람을 가장 직접적으로 충족시켜 준다. 제는 점점 더 집단 흐름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곳에서 느끼는 온화하고 친밀한 공동체 의식에 젖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양계를 뒤덮은 인류는 점차 다른 별들을 개척할 준비를 한다. 이미 지구에는 수십억 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이가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합류하며, 그런 집단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언젠가 시작될 우주 식민을 위해, 이 ‘의식 집단’들은 서로 다른 별로의 이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복제 자아들을 내보낸다. 그들은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가상 사회’를 건설할 것이고, 엄청난 대역폭으로 연결되어 사실상 ‘수십억 개의 마음이 모인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게 된다.

제는 문득, 옛날부터 ‘우주 정복’을 동경해 왔음을 떠올린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지만, 묘한 향수가 인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픈 쪽에 표를 던진다. ‘안정 속에 머무르자’는 의견도 강해, 집단 의식 안에서 의견이 갈린다. 결국 쉽게 합의가 나지 않자, 집단은 ‘처음으로’ 일시적으로 자신의 개별 구성원들로 분화하여, 각자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수십 년 만에, 그는 다시 온전히 ‘혼자’가 된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독과 낯섦이 얼마나 기이한지, 그는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이렇게 외롭던 상태를 과거에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러나 결정을 내리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는 이미 가고 싶어 하던 걸 알고, 엘레나(본래는 그의 일부이자 동시에 그녀이기도 했던 존재) 또한 같은 마음일 거라는 걸 안다. 떠나기 전, 그는 오래전 자신이었던, 씁쓸하고도 냉소적인 청년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음이 벅차오른다. **정말로 ‘사랑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때 그 자신이 얼마나 작고 혼란스러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먼 길을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뭉클하다. 이제 그는 더 광활해질 것이고, 훨씬 더 먼 곳을 누빌 것이며, 모든 희망과 사랑과 기쁨을 다 경험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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