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줄곧 인간의 지능을 개인의 뇌에만 한정하는 건 좀 제한적이고, 심지어 편협한 시각이라고 느껴 왔어요. 제게 지능이란 본질적으로 ‘집단적 현상’입니다. 단순히 뇌만의 작동이 아니라, 협업과 규모, 그리고 사회적인 맥락에 관한 것이죠.”
인공지능(AI) 연구의 선두에 선 Blaise Agüera y Arcas
Google의 VP/Fellow이자 ‘기술 & 사회(Technology & Society)’ 분야 CTO인 Blaise Agüera y Arcas는 오랜 기간 AI 연구를 이끌어 왔다. 그는 컴퓨터공학, 신경과학, 생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와 전문 지식을 융합해 독특한 방식으로 AI 연구를 수행하는 'Paradigms of Intelligence(Pi)' 팀을 이끌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연구자이자 엔지니어, 작가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그가 Pi 팀을 통해 AI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았다.
그가 AI에 매료된 배경에 대해
“저는 어릴 적부터, 우리가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았어요. 보통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교 생활보다 컴퓨터만 붙들고 있던 ‘컴퓨터 너드’였죠. 어릴 때 별의별 해킹을 다 했었고, 게임 복사를 막는 보호 장치를 깨뜨리는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컴퓨팅 관점에서 뇌를 바라보는 시각’에 엄청나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자연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도 컸고요. 원래는 물리학자가 되려고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과학이 입자물리나 우주론보다 더 깊고 흥미로운 질문들을 다루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Pi 팀의 미션: 지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한 기존 가설을 재검토하고, 보다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패러다임을 탐색하다
“우리는 지능에 대한 기본 가정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이 가정들을 어떻게 깨거나 바꿔볼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뇌가 예측 모델로 작동한다는 전제가 있잖아요. 과거의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뇌가 존재한다는 설이죠. 저는 사실 이 이론을 전적으로 믿어본 적이 없어요. 뇌가 실제로 작동하는 근본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요즘 AI가 하나의 큰 문제를 어느 정도 풀었다고 느껴지는 굉장히 흥미로운 시기지만, 동시에 ‘20년 뒤에 깨어난다면 과연 지금의 트랜스포머나 챗봇 기반 기술이 그대로 쓰일 거라 믿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죠. 우리의 연구는 지능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넓히는 겁니다. 그래서 복잡계 과학에서부터 사변적 철학까지 아주 폭넓은 분야의 시각을 도입하려고 해요. 지능과 계산에 대해 정말 기초부터 다시 생각해보려는 거죠.”
Pi 팀이 ‘복합적이고 다학제적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모은 인재들
“우리는 Mila나 산타페연구소(Santa Fe Institute) 같은 곳과 함께하고, Pi 방문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철학자 Benjamin Bratton 같은 분들도 모시고 있어요. 이분들은 계산이라는 개념을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또, 엔지니어와 철학자, 그리고 AI 바깥 분야의 연구자들 등 정말 다양한 사상가들이 모여 있어요. 모두 다른 관점을 갖고 있고, 특별한 공식은 없지만 ‘이질적인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죠. 예를 들어, 엔지니어와 철학자, 또는 과학자를 짝지어주기도 해요. 아주 다른 관점이 부딪힐 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제 직관으로는, 인간이 하는 모든 흥미로운 일은 어떤 형태로든 ‘혼종(hybridity)’에서 나온다고 봐요. 여러 가지 흐름이 독특하게 교차할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하죠.”
인간 개개인의 지식에서 공동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고도화된 지식 네트워크로—AI가 가능성을 확장할 핵심 관점
“우리는 일종의 메타-시스템, 즉 다른 시스템에 영향을 주고받는 시스템들을 이해하려고 해요. 지능은 단순히 뇌에서 뉴런들이 firing하는 것만이 아니고, 기계 회로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지능은 진화나 발달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고, 더 큰 생태계 안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됩니다.
제가 늘 느껴온 건 인간의 지능을 개인의 뇌 속에만 국한해 생각하는 건 너무 좁은 관점이라는 거예요. 심지어 좀 편협하다고까지 할 수 있죠. 저에게 지능이란 본질적으로 ‘집단적 현상(collective phenomenon)’입니다. 협업과 규모, 사회적 네트워크가 핵심이에요. ‘인간 지능’이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우리 모두의 협력—즉 ‘초인간적(superhuman)’ 수준의 집단 활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때가 많거든요. 단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만 보고 지능을 판단할 수 없어요.
그래서 AI 모델이 새 지평을 열려면, 결국 인간의 사회 규모만큼 확장된 상호작용이 필요할 거예요. 고난도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AI를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진짜’ 사람도 사실 얼마나 드물까요? 그런 문제를 푸는 건 극도로 한정된 능력이에요. AI 모델도 인간처럼 만능 지능으로 설계된 게 아니에요. 엄청난 양의 인간 집단 지식에서 패턴을 학습하는 것이죠. 그런데 ‘딥러닝 모델이 스스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따져보면,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결국 사회적 상호작용이 핵심이에요. 예를 들어, 단 한 사람이 인터넷을 뒤적이며 클릭 몇 번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수론 학자 50인’ 안에 드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진짜 50인 안에 들려면 다른 49인과 수많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하며 그 분야의 공동체 속에서 성장해야 해요. 시인도 마찬가지죠.”
‘한 뇌’의 범위를 넘어선 학습 개념 확장—협력적인 사회적 네트워크가 빚어내는 지능
“만약 인간 하나를 출생 순간부터 완전히 고립시켜 키운다면, 그 존재가 다른 동물군과 비교했을 때 그리 압도적 지능을 갖추진 못할 겁니다. 우리와 다른 유인원(ape)의 차이가 개인 차원에서 엄청나게 극단적인 건 아니에요. 몇몇 동기가 다르고, 인간이 더 힘이 약하다거나 협업을 좀 더 잘한다는 차이가 있긴 하죠. 하지만 ‘진짜 마법’은 인간이 함께 일하고 더 큰 집단을 이루었을 때 발생합니다.
인류학에서는 지난 10~15년 동안 이런 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흥미로운 연구가 이뤄졌어요. 한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기술과 예술의 복잡성이 높아진다는 내용이 있죠. 호주 본토와 분리된 뒤 태즈메이니아에서 일어난 사례가 유명해요. 태즈메이니아는 호주 본토와 단절되면서 본토에서 보던 여러 기술이 사라졌어요. 낚시에 유용한 몇 가지 기술도 잃었는데, 이들이 인간으로서 본토 사람들보다 덜 똑똑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단지 인구가 적고 고립돼 있었을 뿐이죠. 인간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 중 상당수가 사실은 아주 ‘집단적’인 영역입니다. 개인 하나가 그렇게 똑똑한 존재는 아니에요.”
관습적 사고 틀을 벗어, 지능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나가기
“저는 ‘생산적이고 상호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패러다임’에 굉장히 관심이 큽니다. 그런 맥락에서 AI를 인간 지능과 뚜렷하게 분리해서 보지 않아요. 이미 우리의 지식 네트워크 상에, 뇌가 아니라 실리콘 기반의 ‘노드(node)’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짜 지능은 이 노드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Paradigms of Intelligence 팀은 기존의 학문적 경계를 뛰어넘어요. 인간·사회·계산(컴퓨팅) 등 여러 각도에서 지능을 탐구하고 있죠. 이렇게 기존 가정을 의심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지능 패러다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싶습니다.”